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토머스 스태퍼드 (문단 편집) == 생애 == 1930년 9월 17일에 태어났고 고향은 [[오클라호마]]의 웨더포드이다. 어릴 적엔 [[보이스카웃]]에서 놀았고 1948년에 [[미국해군사관학교]]에 진학했다. 1952년에 '''[[미 공군]]''' 소위로 임관하였다. [[미국공군사관학교]]가 생기기 전이라서 [[미국육군사관학교]]와 해사에서 [[임관]] 인원의 일부를 공군으로 배치하던 시절이었다. 동기로 [[짐 러블]]이 있는데 짐은 해군으로 갔다. [[미 공군]]과 [[미 해군]]은 [[제독들의 반란]]을 겪을 정도로 사이도 안 좋았고 당시 미 공군 장교단의 주류는 [[미국육군사관학교]] 출신의 [[육군 항공대]] 장교들이었기에 험난한 군생활을 했다. 조종사로 활동하다 [[테스트 파일럿]]이 되었고, 1962년에 NASA가 야심차게 뽑은 뉴 나인(New Nine, [[NASA 우주인단]] 2기)에 선발된다. [[제미니 계획]]에서 제미니 6A호, 제미니 9호[* 원래 백업이었지만 엘리엇 시와 찰스 배셋이 [[T-38]] 추락사고로 함께 순직하자 급히 정규팀으로 배정되었다.], 이후 [[아폴로 계획]]에서는 [[아폴로 11호]]의 리허설 격[* 리허설이라고만 치부하기엔 좀 그런 것이, 아폴로의 사령/기계선과 달 착륙선이 함께 달로 향한 것은 10호가 처음이었다. 다만 이 미션에서는 달 착륙선의 달에서의 발사 기능이 미완성이었기 때문에 착륙을 감행했다가는 [[홍콩행 게이바|들어올 때는 마음대로였겠지만 나갈 때는 아니란다]]. 결국 달에서는 착륙선은 홀로 고도 15km 지점에서 비행을 하는 저궤도상 테스트에 만족해야 했지만, 이 당시 함께 달에 갔던 사령선 조종사 [[존 영]]과 착륙선 조종사 [[유진 서넌]]은 [[아폴로 16호]]와 [[아폴로 17호]]의 사령관으로 달을 밟았다.]이었던 10호의 사령관을 맡았다. 그의 임무 중엔 컬러 텔레비전과 관련된 것도 있었고, 아폴로 10호는 지금까지 이어지는 유인 우주선의 최고 속도 기록 등 갖가지 역사적인 기록을 수립하였다. 하지만 그에 대해서 가장 유명한 것은 우주선에서 똥덩어리가 둥둥 떠다니는 것을 목격한 사건이다. 좀 더 자세한 내용은 [[아폴로 10호]] 문서 참조 이후 NASA의 아폴로와 [[스카이랩]] 계획에서는 지상에서 승무원 교육과 팀 배정을 담당했다. 한편 1971년에는 [[소유즈 11호]]의 재진입 도중 여압복을 착용하지 않았다가 사망한 세 소련 우주비행사의 소련 국장에 NASA의 조문단으로 참가하여 관을 운구하기도 했다. 이 인연으로 소련과의 합동 우주개발에 큰 관심을 갖게 된다. [[파일:external/upload.wikimedia.org/220px-ASTP_Training_at_Star_City_-_GPN-2002-000158.jpg]] [[스타 시티]]에서의 훈련. 4차 비행인 1975년, 미국이 문레이스의 승자로 결정난 가운데 데탕트 시대를 여는 상징적 사건인 [[아폴로-소유즈 테스트 프로젝트]]에서 아폴로 사령관을 맡았고, 인류 최초의 [[EVA]]를 실시했던 [[소련]]의 우주 비행사 [[알렉세이 레오노프]](Алексе́й Архи́пович Лео́нов, Alexey Leonov)와 큰 친분을 쌓았다. 함께 올라간 이들 중에는 머큐리 계획의 멤버였으나 심장병으로 행정직을 전전하다 근성으로 우주에 올라간 [[디크 슬레이튼]]도 있었다. 총 우주체류시간은 21일 3시간 42분이다. [[파일:external/upload.wikimedia.org/600px-Portrait_of_the_American_ASTP_prime_crewmen.jpg]] 아폴로 측 승무원들. [[디크 슬레이튼]], [[밴스 브랜드]][* 아폴로 18호가 취소되기 전에 사령선 조종사로 예정되어 있었다. 그의 이름은 훗날 SF영화 [[인터스텔라]]의 주인공 이름으로 쓰이기도 했다.], 그리고 스태퍼드. [[파일:external/upload.wikimedia.org/600px-Portrait_of_ASTP_crews_-_restoration.jpg]] 양측의 합동 찍찍... 레오노프 옆의 소련 우주비행사는 발레리 쿠바소프.[* 사실 이 말은 브랜드에게 좀 억울한 것이, 브랜드 역시 우주왕복선이 4차례의 테스트 비행을 마치고 첫번째로 정규 궤도 미션을 시작한 STS-5의 사령관이었으며 1990년 12월 STS-35 미션까지도 활동했다. 우주비행사로는 물러난 이후에도 실험기 연구에 매진하며 2008년까지 오랫동안 근무했던 나름대로 레전드 소리 들을만한 커리어를 가졌다. ] 이들 중 디크 슬레이튼을 제외한 4인은 아직 생존해 있고 레오노프는 2019년, 쿠바소프는 2014년 사망했다. 여전히 양국의 우주개발 교류를 위해 활동하고 있다. [[아폴로 계획]]을 다룬 [[HBO]]의 드라마 [[지구에서 달까지]]에서는 제일 중요한 우주비행 장면은 진짜 살짝만 나오면서 잘렸다. 사실 아폴로 10호가 달 착륙선 개발 완료라는 큰 의미를 갖는 아폴로 9호에 비해 별다른 사항이 없이 11호의 리허설 성격이었기 때문에 10호를 자세히 다루기엔 애매하기도 했다. 우주에서만 잘렸다 뿐이지 지상에서의 이야기에서는 꽤 비중이 있게 나오긴 한다. [[제미니 계획]]의 첫 유인 미션인 제미니 3호로 함께 배정되어 팀을 이뤘던 선배 [[앨런 셰퍼드]]가 귓병을 앓고 있음을 처음으로 알게 되는 인물. 그런데 셰퍼드는 스태퍼드에게 나 잘리면 너도 잘리는 거라고 겁을 주며 이르지 말라고 한다.[* 심장질환이 발견되어 그라운딩 처분이 내려져서 행정직으로 활동하던 [[디크 슬레이튼]]이 제미니 이후 아폴로까지 팀원 배정을 맡았다. 초창기였기 때문에 한번 정해진 팀을 맘대로 쪼개지 않으려고 했으므로 셰퍼드가 잘리면 스태퍼드 역시 잘릴 수 있었다. 결국 둘 다 [[거스 그리섬]]과 [[존 영]]으로 교체되었고, 스태퍼드는 제미니 6A에서야 또다른 머큐리 시절 베테랑 [[월리 시라]]와 함께 우주에 나가게 된다. ] 그래도 스태퍼드가 인맥을 동원하여 소개받은 시험적인 수술을 통해 셰퍼드는 달에 갈 수 있었다. 오클라호마 사투리가 매우 심했던 모양이다. 레오노프 말로는 아폴로-소유즈 미션에서 영어/러시아어/오클라호마어라는 3개 언어가 사용되었다. 해사 1952년 임관자 가운데 가장 먼저 별을 달았다. 1975년 아폴로-소유즈 미션 당시 준장에 이르렀는데, 이는 미/소의 양측간 데탕트 분위기 형성을 위해 일부러 '양국 공군의 장군들이 우주에 올라가서 양국의 평화를 도모한다'는 프로파간다 성격으로 진급한 것이긴 했으나 계속하여 빨리 진급하였다. 1978년에 48세의 매우 어린 나이로 중장을 달았다. [[엘모 줌왈트]]의 사례를 보면 알겠지만 [[인사적체]]가 그리 심할 때가 아니어서 장군을 빨리 달 수 있었다. 60대 장군들도 자주 나오는 21세기의 미군과 다를 때. 1979년에 퇴역했다.[* 당시는 중장으로 최저 복무기간이 존재하지 않던 시절이었다. 요새는 3년 근무 안 하면 소장으로 강등되어 전역.] 노년에도 항공우주개발 분야에서 정력적인 활동을 지속했다. [[STS-107]]의 비극적인 공중분해 사고 이후 마찬가지로 우주비행사 출신 리처드 코비(Richard Covey)와 함께 재발 방지 위원회(Stafford-Covey Commission)를 이끌었다. 동명이인이자 동향인 [[천문학]]자 톰 스태퍼드도 나름대로 유명하지만 전혀 상관없는 남남이다. 이 톰은 소행성 천문학자로 활동 중인데, 우주에 갔다온 톰과 소행성 찾는 톰을 헷갈리는 사람들도 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